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(문단 편집) === 초년기 ===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[[파트리키]] 가문인 [[클라우디우스]] 씨족의 [[플레브스]] 지파인 마르켈루스 지파 출신이다. 많은 학자들은 이들이 본래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[[클리엔테스]]였다가 평민들에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정책에 따라 지파로 편입되었으리라 추정한다. [[플루타르코스]]는 마르켈루스의 어원이 전쟁의 신 [[마르스]]라고 주장했지만, 현대 학자들은 프라이노멘인 마르쿠스에서 변형되었으리라 추정한다. 증조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기원전 331년 마르켈루스 가문 최초로 집정관에 올랐다. 조부 [[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(기원전 287년 집정관)|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]]는 기원전 287년 집정관에 선임되었다. 아버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는 [[파스티 카피톨리니]]에 이름을 올렸지만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았다. 플루타르코스는 마르켈루스의 형제로 '오타킬리우스'가 있었다고 언급했다. 일부 학자들은 이 인물이 기원전 217년과 214년에 [[법무관]]을 역임한 [[티투스 오타킬리우스 크라수스(시칠리아 총독)|티투스 오타킬리우스 크라수스]]이며, 마르켈루스의 이복형이었으며 오타킬리우스 가문에 입양되었다고 추정하지만, 이것이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. 플루타르코스는 마르켈루스가 전사했을 때 60세를 넘기지 못했다고 밝혔다. 이에 따르면, 그는 기원전 268년경에 출생했을 것이다.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젊은 시절에 [[제1차 포에니 전쟁]]에서 활약했고 성숙기에 [[켈트족]]과 싸웠으며, 노년기에 [[한니발 바르카]]를 격퇴하기 위해 다시 무기를 들었다고 서술했다. 그러면서 마르켈루스는 모든 형태의 전투에 능숙했지만 특히 [[단기접전]]에서 타인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고 덧붙였다. 그러나 마르켈루스가 초년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자료가 미비해 알 수 없다. 단지 마르켈루스가 적에게 둘러싸여 살해될 위기에 몰린 '형제' 오타킬리우스를 방패로 보호하고 적병들을 제압했다는 플루타르코스의 서술만 전해질 뿐이다. 기원전 226년, 마르켈루스는 [[아우구르]]에 선임되었고 뒤이어 [[조영관]]에 선출되었다.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, 이 시기에 호민관 또는 보조 조영관을 맡던 가이우스 스칸티니우스 카피톨리누스가 마르켈루스의 어린 아들을 타락시키려 하자, 마르켈루스는 이에 격분해 소송을 제기했다. 스칸티니우스는 이를 부인했지만, 어린 아들 마르켈루스가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을 털어놨고, [[원로원]]은 순수한 어린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보고 스칸티니우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했다. 마르켈루스는 스칸티니우스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은 그릇을 제작한 뒤 신들에게 바쳤다고 한다. 이후 기원전 224년 [[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]]와 함께 [[법무관]]에 선임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